11년 동안이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는데 결국 터져버렸고, 내가 한 모든 짓은 그야말로 삽질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는 말 따윈 믿지 않는다. 죽을 만큼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세상이라고 아버지는 현실적으로 살라 말하지만 나는 늘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만을 바랐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은 그 때 좀 더 모질었어야 했다. 그때 나는 막 신문 스크랩을 하던 중이었으니까 흉기는 충분했다고. 책상 위의 커터칼이라도 집어다 내 목을 디립다 따던지 했어야지, 좀 세게 나갔어야 그나마 손해를 덜 수 있었다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그렇게 약하니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돈이고 몸이고 다 갖다 바치다 인생까지 들어바친 거야.
그리고 그때라면 충분히 죽어 줄 용의도 있었어.
그래도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숨에 차 할딱거리면서도 모가지에 걸린 팔뚝을 개처럼 물어뜯었다. 여전히 내 몸에는 그 날 새겨진 상처가 남아있다. 나를 봤을 때 당신은 약에서 깨어나 멍한 눈으로 내 팔을 바라보며 가만히 자기 소매를 걷어올렸다. 아, 핏자국. 내가 낸 거다. 그 때의 나는 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그 때의 나는 살고 싶었다. 정말.
그래도 죽지 않았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구나, 하는 걸 알았다. 물론 인간은 인풋이 아웃풋으로 도출되는 합리적인 기계가 아닌지라 그 사람의 인생이 나와 같진 않았지만(그리고 걷는 길도 다르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나지 않는다. 정교한 끝말잇기 기계는 어느새 의미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해서 항상 암울해한다. 여전히 세상은 거대하고 삶은 기적이며 생존은 시궁창.
"너 요즘 무슨 짓을 하는거야?"란 말을 들었다.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마시고 약도 안 하는데다 문신 판 적도 없어."하고 궁금해 할 만한 모든 걸 해명했다. 그래도 제법 애정 가득한 걱정을 들었고 생각만큼 기분 나쁜일은 아니었다. 소심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일. 그렇지만 여기까지.
그건 불가항력적이었어, 그러니까 이젠 네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라고 말하지만, 어쩌라고. 그게 전부였는데.
전부는 무슨.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방황을 거듭하다 보면 방황이 굳어진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연애도 마찬가지. 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감정은 없지만 껌딱지처럼 인생에 들러붙게 된다.
결국 들은 말은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좋아하니까 괴롭히고 싶다. 언제나 나는 네게 '쓸모없는 인간'이란 말로 네 인격을 모독한다. 그것에 버럭 화 내고 울기까지 하는 네 얼굴을 보면 정말 '즐겁다'. 이거 심각하다. 정말로 나는 이런 짓을 '즐기고' 있다. 네가 우는 이유는 네가 정말로 쓸모없는 인간이란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너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짓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거다. 너는 생각만큼 쓸모없는 인간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뭐 그건 나중에 알던지 말던지 할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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