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04 11:51

사육계 리카 테츠X리카 - 모토니 모도루


(나중에 한 번 다시 제대로 쓸 생각.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음이 앞서 순식간에 쓰는 글이라 정말 두서없음)

국내에『사육담당 리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사육계 리카』의 외전이자 핵심. 본편 시작되기도 전에 자살해서 막상 본편에는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못했지만, 존재감만은 샤론의 A나 리카, 히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격했던 히로의 형 테츠의 이야기.

"1년 전에 엄마는 강간당해서 자살했어. 왜냐고...? 나와 히로가 눈앞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목을 매단 엄마가 오줌을 지린 시체 앞에서 내 아랫도리는 젖어 축축해졌어." 라는 고백은 이야기의 핵심을 강간이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존재하게끔 하는 시선에 돌려놓는다. 학원에서의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 약육강식, 생존을 건 폭력이었고, 그 과정에서 섹스는 공개되며, 그 무미건조한 폭력은 펜치로 손톱을 뽑고 드라이버로 눈을 찌르는 폭력보다도 더 잔인하다.

'엄마처럼 말해 봐. 살려달라고' , '널 엄마처럼 대해줄게', '내 엄마가 되어 줘' - 존재하지 않는 테츠가 모두의 악몽이었듯, 존재하지 않는 엄마-엄마들은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인물들은 유령처럼 엄마의 이름을 되뇌며 폭력과 강간을 되풀이하지만 이미 그 행동은 텅 비어있다 (때때로 그 폭력은 왕자님의 허상을 좇아 결투를 되풀이하는 우테나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도 한다. 물론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그리고 이 텅 빈 껍데기들의 되뇌임은『사육계 리카』본편에서 테츠의 이름을 되풀이하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과도 닮았다. 테츠는 이들의 잠꼬대 같은 중얼거림 속에서 유령처럼 작품 전면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존재다. 빈 공간의 거대함은 그 빈 공간 자체가 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자들이 그 빈 공간의 부재를 비추는 데서 나온다.  

모토니 모도루 만화의 힘은 무슨 거대한 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화려한 이미지가 아무 말도 없이 나열되어 있다는 데서 나온다. 인물들은 무언가를 말함으로써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혹은 말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리카, 살려달라고 말해. 내가 좋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살려달라고 말해줘. 날 지배하고 싶지 않아?' 하고 눈 앞에 드라이버를 갖다댄 테츠에게 처음으로 리카는 '네가 말해' 하고 거부한다. 그 전까지는 테츠의 요구대로 침대에서 '살려줘'를 되풀이했던 리카는, 테츠의 동생 히로의 존재를 안 뒤 테츠의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테츠의 도구나 배경이 아니라 인물로서 성립한다.

"히로...날 엄마라고 불러보렴."

히로와 리카를 (이미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로 만들지 못한 테츠는 이제 자신이 어머니가 된다. 리카는 자기 몸을 팔아 마더 컴플렉스 지루에게 '테츠를 강간해 줘. 마더 컴플렉스인 네가. 테츠는 가장 훌륭한 엄마가 되어 줄 거야.'하고 계약한다. 어머니가 그러했듯 테츠는 사람들 앞에서 지루에게 강간당하며 '살려줘' 하고 중얼거린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엄마가 된 것 같아' 라고 말하며 (그 때 테츠가 짓는 표정은 정말로 아름답다) 텅 빈 집으로 돌아온 테츠는 히로의 환상을 본다. 여기서 모토니 모도루는 가장 무섭게 끝을 맺는다. 모토니 모도루의 결말은 우리 독자들이 '테츠는 어머니의 강간을 목격한 트라우마와 강간 후유증으로 자살했다'고, 알량하고 편리하게 변명처럼 해석하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자식에게까지 욕정의 대상이 되고,
어머니는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목을 매달았을까.

나를 증오했을까, 나를 용서했을까.

...아니,

아냐-

그저 끊어내는, 모든 걸 끊어내는 이 쾌감.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거야, 이 아름다운 나를.

그리고 이야기는 본편『사육계 리카』맨 처음으로 돌아온다. '모월 모일, 히로, 살려줘' 만이 가득 쓰여있는 테츠의 일기와 함께.

『사육계 리카』1부가 이 2부 겸 외전인『사육계 리카-테츠X리카』의 부산물로 느껴질 정도다. 단연컨대, 『사육계 리카-테츠X리카』가 없다면『사육계 리카』를 반도 즐기지 못한다. 본편의 캐릭터들은 외전의 테츠는 물론, 본편에선 이미 죽고 사라진 테츠의 빈자리만큼의 존재감도 발휘하지 못한다. 강력한 존재의 죽음은 블랙홀처럼 주변을 빨아들이고 모든 것의 의미를 소거한다. 테츠는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규정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자체로 테츠는 존재한다. 그 자체로 아무 말도 없이 보여준다.

테츠는 우리에겐 신경쓰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시선의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존재하게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시선이다. 강간조차도 모토니 모도루에게는 행위가 아닌 시선으로서 존재한다 - 왜냐면, 강간당하는 사람은 강간이란 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강간은 상대방을 타자화한다. 강간당하는 사람은 이미 행위에서 밀려난 제3자가 되어 행위를 응시하고 있다. 테츠를, 테츠의 엄마를 괴롭게 한 것은 강간을 응시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었다. 바로 행위에서 배제되어 멀찍이서 이 행위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시선이었다. 테츠가 강간당하며 깨달은 시선은 외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어렸을 때 엄마가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자기 자신의 시선이다.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응시한 테츠는 자기 자신에 한 발짝 다가간다. 동시에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알고보면 텅 비었다고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테츠의 자살은 공동구(空洞區)가 되어 주변의 모든 존재를 껍데기로 만들어버린다. 유령과도 같았던 거대한 테츠의 존재가 사라지자 리카, 지루, 안지는 실존인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방황하는 유령으로서 그 자리를 채우고자 한다. 움직임은 환란을 부르고, 테츠의 동생 히로가 그 환란에 등장하면서 비로소 본편은 독자들의 시선을 허용한다.『사육계 리카』는 이야기가 아니라 껍데기들의 나열을 통해 그 불안이 존재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과 대상이라는 위치(혹은 그렇게 놓이도록 배치를 강요하는 무언가, 혹은 그 배치 자체)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사육계 리카-테츠X리카』의 의의는 본편을 효과적으로 설명한 게 아니라, 본편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체가 본편이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테츠라는 강렬한 존재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단지 우리에게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일상적으로 여겨왔던 가장 기본적인 틀이 전부 뒤집힌다. 동시에 우리는 그 시각의 제국이 포괄하는 함의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음을 깨닫는다. 누구보다도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모토니 모도루의 이미지 나열이 주는 마력은 그런 우리를 조롱하는데서 성립된다.

꼬리 1 : 고 2때 본편 읽고...참 오랜만이네요'-')a;; 그때『사육계 리카』본 같은 반 만화가 지망생이 '저렇게 그림 그릴 수 있다면 다리 한 쪽 잃어도 좋아!' 라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요즘 그림은 입도 축 처지고 펜선이 박력 넘치시는 게 안습이긴 하지만, 확실히 이 때의 모토니 모도루 그림은 장난 아니었죠. 소름이 끼칠 정도로. 

꼬리 2 : tintin님, 까막님, 모토니 모도루의『괴물왕자』감상 쓰려고 이 작가의 예전 책들 뒤져보다 졸지에 이리 빠져서 결국 홧김에 욕망을 참지 못하고 두 번 읽을 새도 없이 '뭔가 써야 해!' 하는 욕망이 앞서; 아침부터 이걸 먼저 질러버렸습니다. 괴물왕자는 과연 언제 쓸 수 있을까요...=_=;; (사실『괴물왕자』시기는 모토니 모도루 초기인지라 꽤나 느끼합니다만. 여건 되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꼬리 3 : 보통 부조리는 코미디가 되는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밀어붙인 이 만화도 무섭군.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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