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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23:53

기사도 야오이 잡담

1. 로쿠세이 미츠미의 정식 라이센스 첫번째 책,『기사와 맹세의 꽃』이 나와서 덥석 집어들었다. 다른 B愛 노벨즈와 달리 참 두툼한 게 고기라고는 멸치만 먹다가 간만에 꽁치를 먹은 기분이라 봉잡은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로쿠세이 미츠미의 책은 이로써 총 세 권이 된 건데, 이 작가 취향인지는 몰라고(...) 세 권 다 공 캐릭터가 지극정성이고, 수 캐릭터는 '공 때문에' 반드시 한 번은 돌림빵을 당한다. 그리고 사랑이 넘치다 못해 애틋한 클라이막스 씬 이후, 몇 장 남은 에필로그가 한창 가슴 벌렁벌렁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좀 썰렁하게 식혀준다는 것도;;

2. 기사 야오이는 제법 취향이지만 의외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내 취향의 기사 야오이는 어디까지나 '갑옷'과 '순애보'인지라, 이거 그리기 귀찮은 사람들이 손을 안 대서인지도 모르겠다; 연예계 날라리 양아치에게 환상을 갖고 있는 80년대풍의 한국 상업지 야오이는 도저히 취향이 아니고, 그나마 동인지 쪽에서 취향이 몇 개 나왔는데...

내가 호박대왕님의『철의 도마뱀』을 좋아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3. 기사도 로맨스가 남녀간의 차별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또한 그 로맨스가 양쪽의 이해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사도 로맨스는 제약받고 있었던 여성-혹은 여성성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상대방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찌되었건, 기사들은 군주, 혹은 귀부인의 사랑을 얻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 상대방은 그것을 '허락하는' 형식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

요즈음 야설이나 야오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공격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은 어디서부터였을까. 밀레트의 말을 끌어오자면, 검열이 느슨해진 시대로 들어오면서 가학적인 공격성이 성욕과 결부되어 '강간' 이라는 형태로 발현되는 소설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여성성에 대한 남성성의 폭력이 대부분을 이룬다. 야오이도 별다르지 않다. '어쨌든 생물학적으로는 남자' 라는 점 때문에 더 노골적일지도 모른다. 야오이나 BL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보수적이란 말은 그래서 꽤 설득력 있다.

헨리 밀러를 계기로, 그나마 '낭만적인 무언가를 유지했던' 로렌스의 방어선도 날아가버렸다. 산지기의 남근에 대한 채털리 부인의 환희에 찬 찬양은 쓴웃음이 나지만, 적어도 그 때는 뭔가가. 흠.

4. 헨리 밀러에 대한 남성들의 동경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탐정 소설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누구였더라, 기억은 안 나는데...어느 20세기 소설 주인공 탐정의 애독서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이었다. 중절모와 바바리로 대표되는 1950년대 남성성에겐 유행같은 것이었을까. (아놔, 그나저나 그 탐정 누구냐; )

5. 기사도 야오이를 꼽자면 츠루기 카이의『흑기사』, 호박대왕님의『철의 도마뱀』, 앞서 말한 로쿠세이 미츠미의『기사와 맹세의 꽃』등 몇 개를 들 수 있다. 좀 다른 식으로 간 걸 들자면 마츠오카 나츠키의『플래쉬 앤 블러드』, 요시나가 후미의 집사와 주군 로맨스, 야오이는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를 내는 것으로는 타카바야시 토모의『마루마』를 더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공 캐릭터는 강렬한 남성성을 드러내지만, 기사도 로맨스라는 틀 안에서 우아하게 변형되어 드러난다. (군주를 지키고자 끌어안고 적에게 대신 얻어터지던 흑기사를 생각해 보라. 요새 보디가드물에서 볼 수 없는 그 순정...-_-;)

그 로맨스를 우아하게 포장하고자, 공 캐릭터는 수 캐릭터에게 순종한다. 그 순종이 '여성성에 대한 남성성의 복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 캐릭터는 계급 높은 인물로 설정된다. 공 캐릭터는 '수 캐릭터 당사자의 허락하게' 그를 끌어안고 계급을 뛰어넘어 남성성을 증명한다. 그 과정은 양측의 이해가 교차점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6. 그러고보면 비록 초기작에다 다소 신파끼가 난다고 해도, 모토니 모도루의「찬미가」는 이런 위치관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모토니 모도루는 야오이나 BL의 '달착지근함'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때로는 비웃는 방식으로 나아갔으니.

꼬리 : 내 컴퓨터가 아니라 잡담도 잘 안 써진다. (실은 화면 배색이 이상해서 눈이 아프다-_-;) 나중에 내 컴퓨터 고치면 다시 쓰든가 해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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