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마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6/11/03 기사도 야오이 잡담 (2)
  2. 2006/08/21 파후 2003년 10월호, 기타 등등.
  3. 2006/06/09 오늘부터 마가 붙는 자유업! 시리즈
  4. 2006/05/20 예상치 못한 공수역전 (3)
2006/11/03 23:53

기사도 야오이 잡담

1. 로쿠세이 미츠미의 정식 라이센스 첫번째 책,『기사와 맹세의 꽃』이 나와서 덥석 집어들었다. 다른 B愛 노벨즈와 달리 참 두툼한 게 고기라고는 멸치만 먹다가 간만에 꽁치를 먹은 기분이라 봉잡은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로쿠세이 미츠미의 책은 이로써 총 세 권이 된 건데, 이 작가 취향인지는 몰라고(...) 세 권 다 공 캐릭터가 지극정성이고, 수 캐릭터는 '공 때문에' 반드시 한 번은 돌림빵을 당한다. 그리고 사랑이 넘치다 못해 애틋한 클라이막스 씬 이후, 몇 장 남은 에필로그가 한창 가슴 벌렁벌렁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좀 썰렁하게 식혀준다는 것도;;

2. 기사 야오이는 제법 취향이지만 의외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내 취향의 기사 야오이는 어디까지나 '갑옷'과 '순애보'인지라, 이거 그리기 귀찮은 사람들이 손을 안 대서인지도 모르겠다; 연예계 날라리 양아치에게 환상을 갖고 있는 80년대풍의 한국 상업지 야오이는 도저히 취향이 아니고, 그나마 동인지 쪽에서 취향이 몇 개 나왔는데...

내가 호박대왕님의『철의 도마뱀』을 좋아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3. 기사도 로맨스가 남녀간의 차별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또한 그 로맨스가 양쪽의 이해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사도 로맨스는 제약받고 있었던 여성-혹은 여성성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상대방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찌되었건, 기사들은 군주, 혹은 귀부인의 사랑을 얻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 상대방은 그것을 '허락하는' 형식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

요즈음 야설이나 야오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공격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은 어디서부터였을까. 밀레트의 말을 끌어오자면, 검열이 느슨해진 시대로 들어오면서 가학적인 공격성이 성욕과 결부되어 '강간' 이라는 형태로 발현되는 소설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여성성에 대한 남성성의 폭력이 대부분을 이룬다. 야오이도 별다르지 않다. '어쨌든 생물학적으로는 남자' 라는 점 때문에 더 노골적일지도 모른다. 야오이나 BL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보수적이란 말은 그래서 꽤 설득력 있다.

헨리 밀러를 계기로, 그나마 '낭만적인 무언가를 유지했던' 로렌스의 방어선도 날아가버렸다. 산지기의 남근에 대한 채털리 부인의 환희에 찬 찬양은 쓴웃음이 나지만, 적어도 그 때는 뭔가가. 흠.

4. 헨리 밀러에 대한 남성들의 동경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탐정 소설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누구였더라, 기억은 안 나는데...어느 20세기 소설 주인공 탐정의 애독서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이었다. 중절모와 바바리로 대표되는 1950년대 남성성에겐 유행같은 것이었을까. (아놔, 그나저나 그 탐정 누구냐; )

5. 기사도 야오이를 꼽자면 츠루기 카이의『흑기사』, 호박대왕님의『철의 도마뱀』, 앞서 말한 로쿠세이 미츠미의『기사와 맹세의 꽃』등 몇 개를 들 수 있다. 좀 다른 식으로 간 걸 들자면 마츠오카 나츠키의『플래쉬 앤 블러드』, 요시나가 후미의 집사와 주군 로맨스, 야오이는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를 내는 것으로는 타카바야시 토모의『마루마』를 더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공 캐릭터는 강렬한 남성성을 드러내지만, 기사도 로맨스라는 틀 안에서 우아하게 변형되어 드러난다. (군주를 지키고자 끌어안고 적에게 대신 얻어터지던 흑기사를 생각해 보라. 요새 보디가드물에서 볼 수 없는 그 순정...-_-;)

그 로맨스를 우아하게 포장하고자, 공 캐릭터는 수 캐릭터에게 순종한다. 그 순종이 '여성성에 대한 남성성의 복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 캐릭터는 계급 높은 인물로 설정된다. 공 캐릭터는 '수 캐릭터 당사자의 허락하게' 그를 끌어안고 계급을 뛰어넘어 남성성을 증명한다. 그 과정은 양측의 이해가 교차점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6. 그러고보면 비록 초기작에다 다소 신파끼가 난다고 해도, 모토니 모도루의「찬미가」는 이런 위치관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모토니 모도루는 야오이나 BL의 '달착지근함'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때로는 비웃는 방식으로 나아갔으니.

꼬리 : 내 컴퓨터가 아니라 잡담도 잘 안 써진다. (실은 화면 배색이 이상해서 눈이 아프다-_-;) 나중에 내 컴퓨터 고치면 다시 쓰든가 해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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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00:00

파후 2003년 10월호, 기타 등등.

1. 북오프에 갔다가 파후 2003년 10월호를 보고 집어왔다. 허니와 클로버 관련기사들...과, 그 뒷면에 숨겨진 흐뭇한 기사들. 어째서 내가 집는 여성향 잡지들은 죄다 안경남자 특집일까.

2. 마츠모토 테마리에 이어 오다기리 호타루까지 아스카에서 보다니. 이 작가 팬이 아닌지라 예전부터 그랬는지 아닌지 잘은 모르지만, 야오이 작가들이 야오이와 무관한 만화로 메이저 잡지에 데뷔하는 것도 이제는 종종 눈에 띈다. 미즈시로 세토나는 실망스러웠던 순정만화 초기작들을 넘어 이제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듯 하고. 그걸 보는 나는 여전히 복잡하다. 미즈시로 세토나가 야오이계에 계속 남아있어봤자 기존 수준 이상의 작품을 내놓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3.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보게 되는 작가가 있다. 야마토 나세가 대표적인 예. 느끼해서 얼굴 짜면 버터가 한 바가지 나올 것 같지만, 신간 나오면 또 뒷이야기 궁금해서 본다. 요즘 신작은...재미없다.

4.『오늘부터 마가 붙는 자유업!』코믹스판 2권과, 그 즈음 읽은 만화책들은 감상이고 뭐고 귀찮아서 접어뒀다. 언젠가 한 번에 올릴 날이 오겠지. 미즈시로 세토나의『방과 후 양호실』도 한 번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워낙 집 안이 돼지우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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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9 23:33

오늘부터 마가 붙는 자유업! 시리즈

0. 언제나 그렇듯 빠순이 인생의 집약체같은 콩깍지 잡설 가능성 농후.

1. 몇 년 전부터 상승기류를 탔던 '꽃미남'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닌지라 다들 '조인성 짱~권상우 캡~'이러는 동안 귓구멍 후비적거리고 있었건만, 작년부터 슬슬 반하기 시작해 결국 최종완결화에서 피를 토하고 만세를 부르게 만든 남정네들이 있으니...(하나가 아니라 복수형이다)

->사진은 전설로 남은 THE BEANS 증간호 Vol.5...
이거 나왔을 때는 막 여행에서 돌아온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서류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예약주문하는 걸 놓치고...이젠 그저 마냥 손가락만 열심히 빨고 있다...블라블라...아...저 특별부록 '상냥한 용의 살해법'은 그저 꿈에서나 일러스트 보던 애인데...-_ㅠ


->네픽에 입고된 '오늘부터 마왕!' 캘린더. 아흑, 이런 데 마음이 동하다니...ㅠ_ㅠ

2. '오늘부터 마왕!' 원작 팬들은 애니메이션이 마 시리즈 특유의 개그를 살리지 못했다고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마 시리즈 8권『땅에는 마가 붙는 별이 내린다!』부터는 애니메이션이 소설 속도를 따라잡아 버린지라 사실상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천하제일 무투대회에서 유리와 콘라드가 카로리아와 대 시마론, 적국의 대표 선수로 나왔던 부분부터 갈라지는 거니까 애니메이션은 36화 즈음부터 완결 78화까지 '네 개의 상자'라는 기본 설정만 가진 채 독자적인 이야기로 나아가게 된다. 뒷부분 스토리는 탄탄한 초반 전개에 비해 조금 일회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삐그덕거리며 다소 헐겁게 나아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 캐릭터와 설정이 있는 덕에 그럭저럭 괜찮은 완결을 끌어냈다.

3. 원작(마루마)과 애니메이션(마니메)의 가장 큰 차이는 시점이다. 원작은 (쓸데없이 용감한) 주인공 유리가 불량배에게 덤비다 공중화장실 변기에 처박히고 그 변기를 통해 진마국에 떨어져 얼떨결에 마왕이 되는 시작부터 주인공의 1인칭 독백으로 전개된다. 물론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순수소설이 아니라 상황 전개를 즐기는 문고본인 이상, 주인공 유리가 없는 곳에서 작가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혹은 관찰자 시점)으로 시점을 바꾸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유리가 있는 한, 이야기는 유리가 주변 상황을 관찰하는 식으로 펼쳐진다. 유리는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결국 등장인물 중 하나이다. 우리는 작가가 3인칭 시점으로 알려 준 상황을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만 유리는 자기의 눈으로 주변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는 독자일 뿐이지만 유리는 그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이야기 전체를 끌고가야 할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그의 내면을 통해 드러나는 세상은 독자가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결코 간단하지 않다. 평범하게 15년간 잘 살아왔는데, 어느날 덜컥 마족 왕이 되어 이웃 나라, 그것도 인간들과 싸워야 한다는 상황은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꽉 차 있을 것 같은 야구소년 에게도 결코 녹록치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평화교육의 모범적인 사례 같은 유리는 언제나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장하지만 늘 주변 사람들에게 타박맞고 질책당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심란한데, 한술 더 떠 대부이자 보디가드, 부하이자 동료인 콘라드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배신하고 적국 간부로 나타났다. 원작과 애니메이션이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매체의 특징이자 차이점이 드러난다.

4. 아니메디아 10월호 부록 가이드북에 실린 인터뷰에서, 니시무라 쥰지 애니메이션 감독은 캐릭터를 언급하며 시점 차이를 말했다.

'유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과 다르므로, 애니메이션에서는 괴로워하거나 화내거나 하는 유리의 표정을 주변 사람들이 좀 더 알아채기 쉽도록 그렸습니다. 그 결과...희노애락이 분명한, 원작보다 고민 많고 상냥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원작의 콘라드는 아직도 유리를 배신한 상태입니다. 쿨하고 미스테리어스한 캐릭터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상냥하고 희노애락도 있는 고민 많은 타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뭔가 유리에겐 굉장히 물러터진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해석 개판)

독자든 시청자든 콘라드의 이러한 배신이 유리에게 완전히 등 돌린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원작에서는 비교적 긴 시간과 줄거리, 종잇장을 들여 유리와 콘라드의 대화, 유리만이 집어낼 수 있는 콘라드의 작은 동요, 콘라드를 바라보는 유리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유리와 콘라드 사이의 감정과 긴장이 제법 오랫동안 팽팽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읽는 게 아니라 보고 듣는 매체이다. 시청자는 내면을 읽을 수 없다. 소리와 말투로 파악할 뿐이다. 그러므로 콘라드의 감정은 눈에 보이는 상냥한 눈빛과 귀에 들리는 안타까운 탄식(-_-;)으로 직접 전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가 알아듣는다.

이러한 긴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콘라드의 속내는 다 알 것 같다. 다만 그가 언제 진짜 속내를 보여줄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만이 기다려질 뿐이다. 35화 후반부에서 유리를 배신하고 적국 대 시마론의 간부로 나타났던 콘라드는 40화 후반에서 유리 앞에 나서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온 몸으로 막는 극적 장면으로 진심을 드러낸다. 이 장면 보던 시청자들, 27화에서 콘라드가 한 팔 잘리면서 유리를 지켰을 때처럼 눈물 흘렸을지도 른다. 실은 내가 그랬다-_-;

->원작자 타카바야시는 뉴타입 2006년 4월호 인터뷰에서
'원작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차남 귀환'
이라고 언급. 우리 집에 있는 마 시리즈 본편 11권『やがてマのつく歌になる!』에서도 아직 배신중이기에-_-; 그 뒤에 나온 12권『寶はマのつく土の中!』스토리가 궁금해져서 리뷰를 보니...럴쑤럴쑤 이럴쑤. 콘라드 배신시킨걸로도 모자라 요자크를 뭔 꼴로 만들었다냐, 이 작가야! 어흑, 그냥 5월 1일에 발매된다는『箱はマのつく水の底!』기다렸다 한 번에 봐야겠네-_-

5. 소설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배신자와 왕의 긴장이 이어진 채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건, 이 소설이 읽기 쉬운 문고본이란 점도 한몫하는 듯 싶다. 책 한 권에 30~40분밖에 안 걸리니까 제법 복잡하고 긴 이야기도 금방금방 술술 읽힌다. 문제는 책 나오는 속도가 오지게 느리다는 거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훌훌 읽은 후엔 '뒷권은 언제 나오나'하고 땅바닥 긁어야 한다. 다행히 나는 원서 졸라 느릿느릿 읽는다 (해리포터 시리즈...아직 해리포터는 숙모 집 못 벗어났다-_-;).

6. 시점과 다루는 방식이 다르므로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유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콘라드니까, 유리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콘라드와 유리의 관계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원작은 '유리의 눈으로 보는 상황 전개'이다. 타카바야시가 3인칭 시점을 넣기도 하지만 주 전개는 유리가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개입하는 형식으로 굴러간다. 볼프람과 귄터의 감정은 유리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다. 독자는 어렴풋한 표현으로 알아서 애정을 짐작해야 한다-_-;

원작에서 다른 사람의 비중은 애니메이션에 비해 약하다. 볼프람의 행동은 원작과 애니가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모든 캐릭터가 시청자에게 '3인칭'으로 관찰되는 상황에서 단연코 부각된다. 뭐 일단 약혼자지만...;
원작의 유리가 신경쓰지 않은 탓에 쉽게 넘어가버리기 쉬웠던 볼프람의 애정은 비교적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쉽게 직설적으료 표현되는 애니메이션에서는(아니...이 애는 원래 직설적이지만...) 콘라드만큼은 아니라도 비중이 제법 커졌다. 원작의 볼프람은 얼굴 예쁜 미소년이지만 애니메이션의 볼프람은 강단 있고 남자다운 아이(82살도 아이라고 할 수 있다면)이다. 볼프람을 바라보는 유리의 시점과 객관적인 모습의 차이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다.

7. 콘라드는 유리가 진마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지지목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완전하지 않다. 현세의 유리를 아끼지만 유리의 전생이었던 수잔나 줄리아도 사랑했다. 때때로 유리에게서 줄리아를 겹쳐보기도 한다. 한 번 배신하기도 했다. 그때 애니메이션에서 유리를 지지해주었던 건 무라타, 볼프람, 요자크, 그웬달 등 다른 캐릭터들이었다. 특히 볼프람은 콘라드가 없는 동안 요자크와 함께 그의 역할까지 대신한다. 원작 콘라드가 배신자로서 유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전개이다. 원작에서 콘라드의 빈 자리를 요자크가 채워주었던 것도 애니메이션과는 다르다.

원작의 콘라드는 차가운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리도 애니메이션의 상냥하고 솔직한 소년과 다르다. 속내를 감춘 채 허세부리고 차갑게 응대한다. 적국 왕의 보좌가 된 콘라드가 무심코 유리를 '폐하'라고 부르자 유리는 '당신의 폐하는 내가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도련님이 콘라드보다 더 남자답군.' 하고 칭찬하는 요자크를 바라보며 속으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그런 작은 걸 걸고 넘어지지 않았어.' 하고 몰래 중얼거린다. 원작 캐릭터들은 상대를 향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만큼 상냥하지 않다. 그러나 더 복잡하다. 겉보기와 다른 두 사람의 내밀한 관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더라도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표출되는 형태만이 포착되는 애니메이션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유리의 비폭력 평화주의 노선도 그러하다. 원작 유리가 주장하는 비폭력 평화주의는 애니메이션 유리의 주장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대상에 적군으로 돌아선 콘라드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8. 애니메이션에서 흥미로웠던 건 볼프람이 유리보다 더 남자답게 보였다는 점. 사이가 미츠키(볼프람 역)는 여자고 사쿠라이(유리 역)는 남자지만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추에이션 때문일까. 볼프람은 유리를 지키는 입장이다. 유리가 볼프람 앞을 막아선 것보다 볼프람이 유리를 지키려고 나선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_-
어째서일까. 이 둘을 보면 에바의 아스카와 신지가 떠오른다. 잠깐, 그럼 콘라드가 레이=_=?

9. 요새는 판타지에서도 보기 드문 기사와 군주의 로맨스. 근본은 개그지만 대사는 낭만적이다. 콘라드가 진왕의 제단에 칼집을 맡기며 '내 검이 돌아갈 곳은 진왕이 계신 곳' 이라 읊조리는 부분이나, 귄터가 유리를 지키기 위해 콘라드와 검을 부딪치며 '내 검을 더럽히는 것은 당신의 피가 될 것 같군요.'라고 말하는 건 요즘같은 시대에 듣지 못한 장중한 로맨티시즘이다. 슬램덩크의 '나올 테면 나와봐' 하는 대사만큼 피가 끓지는 않았지만...

10. 마 시리즈는 개그이면서 패러디물이다. 언어 유희와 인용, 패러디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보는 사람 애 먹인다. 수레를 끌던 양이 길을 잃고 헤매자 무라타는 '양은 2000년 전부터 길치였어. 성경에도 나와있잖아~'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유리를 보고 '과연 공포의 대왕이구나. 하늘에서 떨어졌어...'라기도 한다. 포수 이토를 존경하는 유리는 그의 등번호와 같은 숫자-자신이 진마국 27대 마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27은 좋은 숫자야...'하고 중얼거린다. 20세기 후반을 살지 않은 사람이면 이해하기 어려운, 동시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개그. CM 패러디는 뭐가 그리도 많은지 각주 없으면 제대로 즐기지 못할 지경이다.

11. 예전에 고민했던 부분. 마 시리즈 외전에서 시부야 유리의 형 쇼리는 히토츠바시 대학에 다니는 엘리트로 이시하라 신타로를 존경하며 도쿄 도지사를 꿈꾸는 인물이다. 이 부분에서 마 시리즈 조용히 덮고 안 읽기로 마음먹었으나...-_-; 황폐한 마음에 달려오는 미소년 미청년 미중년 미노년 쌍쌍바를 막을 이성 따윈 남아있지 않아서 결국 얌전히 사랑에 몸을 맡겼다. 그러니 순식간에 휩쓸리더라-_-;

그래서 결론은...불편한 부분 있으면 씹으면서 그냥 보기로 했다. 얘들이 이시하라 신타로 존경하는 거나 한국 애들이 이명박 존경하는 거나 그게 그거지 별 수 있나 식으로 마음을 다스리니 읽힌다.

12.『땅에는 마가 붙는 별이 내린다!』가 나온 것은 2003년 6월이니까 이라크 전쟁 즈음. 후기에서 타카바야시는

"전 작품(『하늘에 마가 붙는 눈이 춤춘다!』)과 이번 작품을 쓰는 도중에 미국이 이라크를 공습에서 '해방' 시키고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 마음속에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테니 제가 여기서 편향적인 의견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다만, 전쟁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어서 전쟁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의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때에는 한쪽만이 아니라 쌍방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고, 양자의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고 종교적 사상에 대해서 알 필요도 있습니다. 현지의 생활상이나 사회구성,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인간 방패'등의 할동으로 현지에까지 달려가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현지에서의 처신 방법도 모르는 분이 그곳에 가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뿐이니까요.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주간지도 인터넷도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도 충분해요. 해당 국가가 제공하는 정보만이 아니라 제 3국이나 NGO, 초국가적 조직 등 수많은 입장의 의견, 정보를 받아들여 음미하고, 이번 전쟁에 대해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일본이란 나라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작가의 할아버지가 2차대전 참전자였다는 말도 덧붙이며. 종전 이후 평화교육의 산물인 전형적 휴머니스트를 보는 듯한 느낌. 이와나미 문고 지식인들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것과도 연결된, 조금은 복잡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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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작성글. 그 이후 5월에 나온 '상자는 마가 붙는 물 아래에!' 도 봤다. 스토리는...으음. '못된 남자아이의 가슴 밑바닥에는 자식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다' 였다. 유리를 사이에 둔 남자들의 에로틱하고 피가 튀는 전투는 아직도 전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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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0 22:08

예상치 못한 공수역전

야오이에서의 공수 구분은 아주 중요하다. 내가 '수'로 철썩같이 믿었던 애가 알고보니 '공'이었다거나, 혹은 내가 밀던 애들이 아니라 다른 애들이 커플이 될 경우 아무리 작품 완성도가 높다 해도 거리낌없이 처분한다. 예컨대... 나는 오키아유 료타로의 목소리를 미친듯이 사모했지만 결국 그가 궁도부장 배역을 담당한 '궁도부장X주인공' 커플링을 인정하지 못한 탓에(학생회장X주인공 지지자였다) 애써 구한 학원헤븐 드라마CD를 얌전히 어디 골방에 처박아야 했다. 오레시타 첫번째 드라마CD 듣다가 미도리카와가 목소리를 담당한 쿠로사의 포지션에 뜨악해서...길거리에서 듣고 있었는데...순간 '으악!'하고 비명을 질러버렸던 것이다.

'쿠로사키의 안...뜨거워...'

히구치의 이 대사를 들은 나는 그 자리에 고꾸라질 뻔했다.

젠장. 쿠로사키 이 자식아, 이름처럼 시커멓게 좀 덮쳤어야 했을 거 아냐-_ㅠ 순애보로 가면 결국 속 시커먼 것들이 꼭 자청해서 '수'를 맡으니까 문제다. 음험한 것들이 덮치는 걸 보고 싶다. 그런데 그러면 꼭 순애가 아니라 귀축이 되니까 문제고...에...

아무튼 귀축은 싫다고=_= 순애인데도 얌전히 덮치는 그런 거 없나?

게다가 미도리카와 '수'가 대세인 이 야오이계에 나는 힉겁했다. 슬램덩크 루하나로부터 시작된 원류이니만큼(정식으로 따지자면 고등학교 1학년때로 올라가야 하지만...에...아무튼 그건 접어두고), 루카와를 담당했던 미도링은 당연히 '공'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대세는 미도링 수 orz

결국 마츠모토 테마리의 단편을 녹음한 드라마CD에서(원작 타이틀은 '왕자님의 공부') 맥 빠진 듯 하면서도 노곤하게 섹시한 미도링 '공'을 듣고 떨고야 말았다. 흥분해서냐고? 아니, 감격해서-_-;
쿠로사키 '수'로 쇼크먹었던 내 가슴도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비록 설정상 '마냥 귀여운 줄 알았던 옆집 동생이 덩치만 커다래져서는 건방지게도 옆집 형을 잡아먹으려 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옆집 동생 힘내라! 나는 연하공(+연상수+안경) 지지자다-_ㅜ

그래서 나는 마이너라는 소리 들으면서도 미도링 공을 지지한다-_-;


공수역전 하니까 생각나는 것.

요 몇 달 동안 사쿠라이 타카히로가 주연한 드라마CD들 들으며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버닝했다. 오늘부터 마왕! 시리즈의 사랑스런 열혈 소년 마왕님에게 한창 반했던지라 가지가지 드라마CD 접하며 사쿠라이상의 강직한 소년다운 목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던 터, 갑자기 날아든 그것은...

...사쿠라이 타카히로 '공', 거기다 치바 스스무가 '수'!

맙소사. 아무리 망가진 작품이었다고 해도, 당신은 봉신연의에서 '양전' 이었다고, 치바상. 봉신연의 동인계에서 '양전' 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거야? '양전'은 그 방대하던 봉신연의 동인계의 명실상부한 최강 커플링 '양전X태공망'의 공이었다고. 태공망뿐만 아니라 나타, 천화 등 날고긴다던 잘나가는 남자들을 한큐에 깔아눕혔던 그런 캐릭터라고. 물론 위호, 옥정에 대해서는 '수' 포지션으로 많이 먹혔지만...아무튼 당신은 전천후 만능 캐릭터였다는 거지.

슬램덩크로 따지자면 루카와였어. 당신은. (하긴 루카와 맡았던 미도링이 '수'인 걸 보면...아흑; 물론 치바 스스무도 배역 중 '수' 비율이 단연코 높지만...양전이...양전이...orz)

저 문제작은 코노하라 나리세 원작의 WEED.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책이니만큼 드라마CD로도 재미있게 들었는데 (사쿠라이 공의 충격은 잠시 접고)...여기서 또 한 번 충격먹었다.

...사쿠라이 공이라는 이 예상치 못한 포지션에 제대로 빠져버렸다 orz

사쿠라이 타카히로 목소리의 매력은 올곧은 10대소년같은 당돌함과 시원시원함, 살짝 드러나는 서투름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연하공' 으로 발산된다고 생각해 봐라.

'와카미야상'
'당신을 안고 싶어. 안기는 게 아니라 안고 싶어.'

...와카미야상-하고 부르는 오카다(사쿠라이가 담당)의 어색하면서도 당황한 듯, 그러면서도 열정적인 소년의 목소리에 반했다. 여기서 고백하건대, 나는 이성을 볼 때 가장 먼저 목소리와 손가락을 보는 인간이다 orz

설정상 오카다 신야는 상당히 매력적인 손가락과 손놀림-_-;을 가지고 있었다. 달리는 걸 좋아하는 올곧은 남자라는 점도, 야들야들한 허리도, 완전 제대로 내 취향이시다. 비록 10대 후반에 결혼해서 20대 초반에 마누라와 자식을 잃은 불행한 남자의 무게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사쿠라이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그런 안타까움도 저멀리 잊게 만들어준다.

와카미야상. 당신은 땡잡은거야. 사쿠라이...아니, 오카다같은 목소리를 한 남자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당신 말대로 '그 남자를 만난 게 당신 운의 끝이야'

아...정말이지 orz


반할 만한 남자 목소리 찾기 어려운 세상. 에라이.
아무튼 현재, 사쿠라이 타카히로에게 반했습니다. 좀 오래 전부터였지만. 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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