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미 유키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6/08/18 손바닥의 성좌, 시집오지 않을래?
2006/08/18 23:31

손바닥의 성좌, 시집오지 않을래?

1. 손바닥의 성좌 - 사쿠라기 치사코/호나미 유키네
: 호나미 유키네의 다소 자폐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사랑의 갈증』은 단연코 최악이었다), 그래도 예쁜 그림은 어쩔 수 없었던지 또 집어왔다. 그래도 이번 작품은 후반부까지 제법 밀고당기기가 이어지기에(마지막에서는 그게 몽땅 순식간에 풀려버려지만;) 괜찮구나 싶었는데, 원작자가 사쿠라기 치사코란 걸 알고 '과연...' 하고 끄덕끄덕.

사쿠라기 치사코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무난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나른하지 않고, 감정을 잘 잡아내서 중요한 순간마다 보여주는 테크닉은 상당하다. 끝이 예상되는 뻔한 이야기라 해도 결말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작가의 역량인 걸 보면, 시작과 결말이 뻔한 BL 장르나 순정만화에 목 매다는 팬들이야말로 테크닉의 묘미에 가장 민감한 게 아닐까. (그렇게 따지자면 소년점프 만화도 다 따지고 들어야 하겠지만)

미즈호와 엔지의 어렸을 때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부분, 자신도 모르게 속에서 끓고 있는 감정을 살짝살짝 보여주는 부분, 그리고 귀여운 부분-_ㅜ의 묘사는 특히 매력적이다. 사쿠라기 치사코와 호나미 유키네의 궁합은 이런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빛을 발하며 전체적인 퀄리티를 끌어올린다. 호나미 유키네가 그림을 맡은 전작『RIN!』(칸나기 사토루 글)은 소소하지 못하고 다소 크게 썰어내는 듯한 게 있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는 계속 손이 간다. 역시 원작자와의  궁합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보다.

꼬리 : '성좌'는 '별자리'로 풀어 써도 되지 않나? 발음하기 어렵다구.

한 살 아래의 사촌동생 엔지의 대학 입학과 하숙을 계기로 7년만에 다시 만났지만, 미즈호는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더군다나, 7년 전까지만 해도 귀여웠던(...-_-) 엔지는 어느새 미즈호보다 더 어른스러운 남자가 되어 있었다. 미즈호는 껄끄러움을 참고 자기 집에 하숙하게 된 엔지에게 잘 해주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엔지는 유독 미즈호에게만 냉정하게 군다. 서먹서먹한 매일이 지나가고, 미즈호는 점점 엔지의 행동 의도를 알 수 없게 되는데...


2. 시집오지 않을래? - 아라야 미키


: 독특한 개그로 국내에도 여러 편이 번역되어 나온 아라야 미키의 신작. 그 전 책들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번 책은 '수의 시중을 들어주는 마누라 머슴공' 이라는 설정 때문에 덜컥 사 왔다.

이 책에서 느끼는 불쾌함은『패밀리 컴포』의 불편함보다 조금 더 깊다.『패밀리 컴포』가 전작『시티 헌터』보다도 성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반 발짝 뒤로 물러난 감이 있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아라야 미키의 신작이 안겨주는 불쾌함도 그와 같은 부류일 것이라 볼 수 있다. 더 껄끄러운 것은,『패밀리 컴포』에서 나타나는 최소한의 고민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하긴 한 권으로 쇼부 보는 이런 책에서조차 '불쾌하다'고 찌질대는 내가 웃기는 짬뽕이긴 하다. 그렇다 해도, 요리 잘 하고 회사 일에서도 능력있으며 청소 끝내주는데다 살림까지 끝장날 만큼 완벽한 주부 공(攻) 카즈미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적인 주부'라는 점은 여전히 불편하다. 보수적인 남자 케이고는 보수적인 남자의 로망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다만 섹스에서는 자신을 리드하는) 카즈미에게 결혼반지를 주고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킴으로써, 그림으로 그린 듯한 드라마같은 부부관계를 완성시킨다. 그 과정에서 카즈미는 '아내'로서 케이고에게 조금도 부족함 없이 헌신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이상적인 것으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

이 책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가 생각지도 않은 이런 부분들이 살짝 속을 긁어대기 때문이다. 작가는 적당히 재미있게 한 권을 채웠으니까 좋았을 터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적어도 강간물보다는 편하게 읽었을 것이므로 작가 좋고 독자 좋고 다 좋은 일이다. 다만, 야오이에서의 강간이 그 자체가 주는 불쾌함을 넘어 여러 형태로 변주되는 정형-비정형의 소재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과정을 거친 소재라면, 이 책에서의 '아내 공(攻)' 설정은 이 책 한 권으로 끝날(혹은 단발적으로 등장할) 일회용 소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이 설정을 적당히 써먹은 작가에게 괜시리 불평을 토하고 있다.

물론 잘 생기고 능력있는데다 등빨 좋기까지 한 남자가 '이건 아내로서 당연한 일이에요' 하고 웃는 걸 보는 건 흐뭇한 일이지만, 그 단순한 역전은 어떤 카타르시스에 이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왕 다룰 거면 비틀거나 비웃어주길 바랐다.

Trackback 0 Comment 0